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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마츠 칫솔’ 임플란트 관리에 탁월한 효과

한국의 친환경 바이오 스타트업 프록시헬스케어(Proxi Healthcare)가 개발한 임플란트 관리에 효과적인 칫솔이 미국 시장에 판매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치과 의학 분야에서 임플란트의 첫 시작은 1960년대다. 현재는 미적·기능적 우수성과 안정적인 수술로 보편화된 구강 회복 방법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잠시 추춤했으나 임플란트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임플란트는 관리만 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보통 10년, 20년을 사용할 수 있다고들 한다. 이것은 임플란트 자체의 문제가 아닌 대부분 식립한 주변 잇몸의 염증이 원인이다.   최근 잇몸 염증 개선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제품이 바로 프록시헬스케어의 ‘트로마츠 미세전류 칫솔(영문 브랜드 TROMATZ.일명 트로마츠 칫솔)’이다.   프록시헬스케어의 특허 기술로 탄생한 ‘트로마츠 미세전류 칫솔’은 인체에 무해한 미세전류로 물리적 접촉과 자극 없이 ‘미생물막(치태)’을 제거하는 혁신적인 제품이다. 이 칫솔에 적용된 트로마츠 웨이브 기술에 대한 원천 연구 논문은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에 게재돼 이미 그 우수성을 입증한 바 있다.     ‘트로마츠 칫솔’은 칫솔헤드 부분에 부착된 두 개의 전극판에서 1초당 1000만 회의 미세전류가 흘러나와 치아 표면에 끼는 치태를 제거하고, 잇몸 세포를 활성화하여 구강질환을 예방한다.     또한 백태 및 구취 개선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이러한 효과는 한국에서 실시된 임상시험 결과로도 증명됐다. 울산대 치주과와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 ‘트로마츠 칫솔’을 사용한 치주환자의 53.6%가 잇몸 염증이 개선되는 효과‘를 거둔바 있다. 또 연세대 치과대학과 진행한 임상 결과 ‘트로마츠 칫솔’을 사용한 교정환자의 플라크 제거 효과가 일반 칫솔 대비 약 6배 높게 나타났다.     인체적용 시험 보고서에 따르면 백태는 65%, 구취는 70% 이상 개선됐다고 한다. 즉, 잇몸에서 피가 나는 잇몸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 교정으로 인해 칫솔질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사람, 백태, 구취가 고민인 사람에게 아주 유용한 제품이다.     특히 ’트로마츠 칫솔’은 임플란트 관리에도 매우 효과적인 제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곧 임플란트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이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진행될 예정이다.   ‘트로마츠 칫솔’을 사용할 때 특기할 사항은 칫솔에 있는 버튼을 한 번 누르고 2분30초 동안 평소와 동일하게 양치를 하면 ‘트로마츠 웨이브’가 알아서 구강 건강을 케어해 준다는 것이다. 일반 칫솔질과 같아 진동으로 인한 잇몸 마모에 대한 우려도 없다.   ‘트로마츠 칫솔’의 효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까지 6만 개 이상의 누적 판매고를 올리며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트로마츠 칫솔’은 지난 10월 초 한국에서 ’제11회 한국전자전 혁신상(KES Innovation Awards)‘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한국전자전(KES)’의 부대행사로 매년 열리는 혁신상은 전자·IT 산업의 성장을 이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프록시헬스케어의 뛰어난 브랜드 제품인 ‘미세전류 칫솔 트로마츠 심플 프로’는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제트 봇 AI+ ▶LG전자 퓨리케어 오브제 컬렉션 에어로퍼니처 등과 함께 스마트리빙 부문 수상제품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또 ‘트로마츠 칫솔’은 인체에 무해한 제품으로, 연방 식품의약청(FDA)과 유럽공동체마크(CE) 등 글로벌 인증을 통과해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했으며, 또한 아마존 닷컴(www.amazon.com)에서도 구입할 수 있어 구매도 편리하다.     프록시헬스케어는 이러한 ‘트로마츠 칫솔’을 개발 시판하는 기술력과 제품력을 기반으로 의료기기 분야와 산업기기 적용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트로마츠 칫솔’ 등 프록시헬스케어 제품에 대한 설명과 문의는 트로마츠 웹사이트(www.tromatzusa.com) 참조.         [인터뷰] 임플란트 전문 치과의사 겸 NYU 데이빗 정 임상교수   시술 후 상처 내  염증 촉진·효소와 독소 생성 위험성     편리한 ‘트로마츠 칫솔’, 치아 건강에 뛰어난 효과 확인       '트로마츠 미세전류 칫솔'에 대해서 전문가들도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세계 의학을 선도하는 미국, 그 중심에 있는 뉴욕에서 임플란트 의과학 분야 권위자도 마찬가지다. 임플란트 시술 총 1만 회 이상, 치과의사 대상 임플란트 강연을 1년에 80회 정도씩 진행하고 있는 임플란트 전문 치과의사 데이빗 정 NYU 임상교수는 ‘트로마츠 칫솔’이 의과학적으로 임플란트 시술 후 치아의 건강에 큰 효과를 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트로마츠 칫솔’ 개발의 모티브가 된 ‘미생물막’은 어떤 것인지요.   “미생물막(bio-film)은 상처 표면에 부착될 수 있는 박테리아 등의 미생물 군집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체의 만성 및 재발성 미생물 감염의 약 80%는 모두 이런 세균성 생물막이 원인입니다. 특히 이런 미생물막이 형성되면 10~1000배 더 많은 항생제 내성을 나타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강내에서는 치석이 가장 흔한 예라고 할 수있는데 이것이 치주염의 원인이 됩니다. 또한, 임플란트에서는 시술후에 상처 내에서 만성 염증을 촉진하는 효소 및 독소를 생성하여 상처의 치유를 매우 어렵게 합니다.”   -임플란트 치료를 받을 때 ‘미생물막’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요.       “이런 미생물막은 치아 혹은 잇몸 표면에 단단히 부착되어 있고 항생제 내성이 커져 신체의 국소 면역반응을 피하기 때문에 제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임플란트 시술에서는 미생물막을 막고 상처를 잘 관리하기 위해 생물막 항균 드레싱을 사용하여 깨끗하게 덮는 접근 방식을 주로 사용합니다. 임플란트 치료 후에는 환자 스스로 상처 치유를 돕기 위해 세균이 없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존 칫솔과 진동 칫솔의 문질러 닦는 방법은 모두 최근에 수술한 부위의 연약한 상처 부위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칫솔과 달리 ‘트로마츠 칫솔’은 어떻게 ‘미생물막’을 제거하는지요.   “‘트로마츠 칫솔’을 사용하면 현재의 기계적 방법이 아니라 미세 전류 파동을 하용하므로 세게 문지르지 않고 통증 없이 치유 부위 주변의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플란트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게 ‘트로마츠 칫솔’이 왜 좋은지요.   “다시말해 이 칫솔은 임플란트 치료, 그리고 또 이후의 유지 관리에 있어 미생물막을 효율적이고 간편하게 제거하므로 환자의 노력을 최소화하는 아주 좋은 해답이 될 수 있기에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분들에게 매우 적합한 칫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박종원 기자프록시헬스케어 트로마츠 미세전류 칫솔 트로마츠 칫솔 트로마츠 심플 프로 트로마츠 웨이브 TROMATZ Proxi Healthcare 데이빗 정 임상교수 데이빗 정 NYU 교수

2022-11-10

주디스 정, 뉴욕 코리아타운 개척자

  ━   [기획] 주디스 정(임정원) 여사, 그는 누구인가      뉴욕은 여전히 모진 겨울의 한 가운데   문득, 봄을 알리는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그 바람 속에 뉴욕 한인 이민사의 첫 장을 연 개척자 한 분이 운명했다.   한인들의 뉴욕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70년대 한인상권의 불모지였던 뉴욕 맨해튼에 씨씨(CiCi)백화점을 창업해 오늘의 코리아타운을 있게 한 주디스 정(Judith Chung. 한국이름 임정원) 여사가 지난 9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추모식과 장례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유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지난 12일 깊은 애도 속에 열렸다.     정 여사는 1974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보이는 맨해튼 32스트리트 브로드웨이 인근에 제1호 한인 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씨씨백화점을 창업해 코리아타운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씨씨백화점 창업과 한인타운   정 여사가 창업한 씨씨백화점은 곧 맨해튼 코리아타운의 역사라 하겠다. 창업 당시 스탠포드호텔 로비 자리에 약국을 겸한 잡화점으로 문을 연 씨씨백화점은 초창기에는 캔디, 건강식품 등을 팔다 점차 사업을 확장했다.     그가 32스트리트에 자리를 잡은 것은 오로지 임대료가 저렴해서였다. 이후 1980년대 중반 코리아타운 발전에 맞춰 씨씨백화점은 점포를 확장 이전하면서 크게 발전한다. 유명 화장품과 선물용품 등을 취급하는 고급 쇼핑센터로 명성이 높아지자 한인 동포는 물론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몰렸다. 한창 때는 고객 한 명이 수천 달러 상당의 물건을 구매하는가 하면, 서울에서 온 소규모 중개상도 많았다.   이를 바탕으로 씨씨 백화점은 1980년대 후반 유명 브랜드 의류는 물론 생활용품, 건강식품, 잡화, 가전제품까지 취급하는 한인사회 최대 선물백화점이 됐다. 심지어 때로는 미국 유명 백화점에서도 구할 수 없는 최고급 브랜드 명품들도 씨씨백화점에서는 구입할 수 있었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IMF)와 함께 한국에서 방문하는 사람도, 고국으로 돌아가는 동포도 많이 줄었다. 이 무렵 60대 후반에 접어든 정 여사는 차남 데이비드 정 회장에게 씨씨백화점을 물려주고 유통 사업에서 은퇴했다. 이후 정 회장은10년간 씨씨백화점을 운영했고, 정 여사는 사업에 대한 열정을 부동산 분야로 전환해 뛰어난 실적의 에이전트를 거쳐 단 2년만에 브로커 라이선스를 따고 곧바로 성공적인 부동산 사업을 구축했다.   70세의 나이에도 청년과 같이 지칠줄 모르는 도전 정신으로 씨씨부동산을 창업해 맨해튼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부동산 사업을 펼쳤고, 이후 80세 중반에 건강이 악화돼 부동산 사업의 성과를 장손녀에게 물려주고 완전히 은퇴했다.   젊은 시절부터 사업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한인사회에 대한 헌신으로 맨해튼에 오늘의 코리아타운이 자리잡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그는 한인 이민 1세대의 진정한 롤모델이다.     영어 솜씨로 두각을 나타내다     정 여사는 한국 전쟁이 끝난 1950년대 동국대를 졸업하고 미국 회사에 취업했다. 당시의 한국은 철저한 남성 위주의 사회였음에도 뛰어난 영어 솜씨와 우아함으로 엘리트 직원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근면한 태도와 능력에 감탄한 미국인 상사로부터 "미국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1963년에 미국행을 결심한다. 당시 한국에서 미국에 오는 한국인들은 극소수였다.       정 여사는 한국에서 직장다닐 때 영어를 아주 잘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중요한 직업 스킬 중 하나였던 타자, 특히 영문타자 솜씨가 탁월해 한국의 유명 타자대회에 참가해 영문 타자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쥐기까지 했다.   정 여사가 미국으로 올 때는 외환관리가 철저했기에 단돈 100달러만을 갖고 나왔다. 당시 여권에는 소지한 외화가 기록되곤 했는데 지금도 남아 있는 정 여사의 빛바랜 여권에는 '100달러' 외환 액수가 적혀 있어 당시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 준다.     정 여사는 뉴욕에 도착한 뒤에 현재의 나이키 수준의 브랜드 밸류를 갖고 있는, 타이어와 운동화를 만드는 회사인 유니로열에서 통역으로 일하다, 평범한 월급쟁이 보다는 바다를 건너온 도전정신으로 그 시절 모두가 부러워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 첫 번째 선택이 당시엔 한인업소라고는 한 곳 없는 지금의 코리아타운에서의 유통사업 씨씨백화점이다. 1967년 4월에 정 여사가 일하러 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맨해튼 번화가에서 브리프 케이스를 들고 세련된 스타일의 복장을 한 하이엔드 비즈니스 우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주인공'을 키운 자녀교육    정 여사는 손이 많이 가는 대표적 업종인 씨씨백화점을 운영하면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자식교육 또한 소홀하지 않은 맹모삼천지교의 모습으로 네 자녀를 키워냈다.   정 여사는 아들 둘과 딸 둘을 뒀는데 첫째인 장남 윤중철 씨는 은퇴했고, 둘째인 장녀 도로시 채는 세인트존스 약대를 졸업하고 현재 뉴저지 홀리네임병원 한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셋째인 차남 데이비드 정은 뉴욕·뉴저지 한인사회는 물론 한국과 미국 재계에 잘 알려진 사업가이고, 넷째인 차녀 그레이스 정-베커는 연방정부 법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이후 주요 정부기관에서 고위 공무원을 역임했다.   정 여사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늘 자녀들에게 "이민자로 살지 말고 미국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인들이 이민자로서 미국에 왔지만 이방인에 머물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학업이나 사업에서 성공해 미국을 움직이는 성공한 인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정 여사는 이러한 가르침과 함께 스스로 거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엄청난 노력과 열정의 모범을 보여 자녀들 스스로 보고 깨닫고 자기들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했다.   식구들이 다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러한 정 여사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자녀가 차남 데이비드 정 회장이라고 한소리로 입을 모았다.  아마도 일을 벌이면 끝을 보고, 또 벌이고, 또 시작하고… 끊임없는 도전이 어머니의 판박이라고 설명한다.   정 회장은 대학을 마치고 어린 나이에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동부에서는 모나스(Mona’s)를, 서부에서는 코스메틱 월드(Cosmetic World)라는 화장품 백화점 사업을 시작해 총 7개의 체인점을 운영하다 어머니 정 여사의 뜻을 따라 10년간 씨씨백화점을 운영하였고, 이후 2003년 명품화장품 3Lab을 창업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04년 빈 창고를 사서 잉글우드랩을 설립, 본격적인 OEM/ODM 사업에 뛰어들었다. 잉글우드랩을 100여 개의 화장품 브랜드의 제품 개발 및 생산까지 하는 혁신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정 회장은 이를 한국의 KOSDAQ에 상장시킨 후 메이저 화장품 제조회사에 매각하고, 2015년에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파머시 뷰티(Farmacy Beauty) 를 설립해 다시금 성공시켜 지난해 12월 거대 다국적 기업 P&G에 매각했다. 현재는 2019년 설립한 iLABS를 운영하며 광폭 경영을 펼치고 있다.   한편 차녀이자 막내인 그레이스 정-베커는 뉴욕시 특목고인 스타이브슨트 고교를 졸업한 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조지타운대 법학대학원을 거쳐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법무부 차관보를 지냈다.   성실 열정 도전의 치열한 삶   자녀들에게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어머니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물려받고, 어떤 모습을 기억할까.     첫 번째는 근면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정 여사는 씨씨백화점을 운영하던 시절 자녀들에게는 “거의 하루 종일 쉬는 시간 없이 일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데이비드 정 회장은 "몇 해 전 먼저 타향길에 나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12세 때 누나와 함께 처음 기회의 땅인 미국에 발을 디뎠는데, 어머니는 24시간 내내 백화점에서 종일토록 일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정 여사는 판매는 물론 새로운 상품이 오면 트럭에서 짐을 내려 옮기는 일까지 할 정도로 모든 일에 열심이었는데, 32스트리트 일대가 당시는 우범지역이어서, 짐을 옮기다 강도나 절도를 당하는 일도 흔했는데 이 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남의 흉을 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던 어머니다. 자녀들이 기억하기로 정 여사는 남의 나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듣는 것도 마땅찮아 했다. 정 여사는 누군가가 남의 험담이나 나쁜 말을 하면 “남 이야기하지 말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라”고 타이르곤 했다.   세 번째는 도전적인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정 여사는 씨씨백화점을 차남에게 물려 준 뒤에 70세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다시 부동산 분야에 나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남들이 어렵다 힘들다고 할 때라도 자신감과 열정으로 이를 극복 기어이 성공의 길을 열었다. 이 때문에 한자리에 모인 자녀들은 “우리의 끊임없는 도전은 천성적으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DNA 덕분이다"라고 감사했다.     한편 정 여사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과 많은 교류를 가졌는데 영화배우 최무룡과 가수 패티 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패티 김은 정 여사와 한국에서 학창시절부터 친구로 지냈기에 뉴욕에 올 때면 늘 만남을 가졌다. 이들 외에도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이 뉴욕에 오면 정 여사를 찾곤 했다.       한인사회를 위한 추모사업   정 여사는 젊은 시절부터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자녀들과 함께 주일학교 출석부터 챙기는 신앙의 원칙에 충실했고, 미국에 와서도 깊은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첫째 딸인 도로시 채 한의사가 불교 신앙을 가진 것에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았다. 타 종교에 관대하고 이해의 폭이 넓었다. 특히 정 여사는 과거 법안스님이 머물렀던 뉴욕 원각사에 적지 않은 희사를 했다.   이에 차남인 데이비드 정 회장은 보다 나은 한인사회를 만들기 위한 재단 설립을 추진하던 중, 맨해튼 코리아타운의 초석을 놓고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어머니의 뜻을 기리고 잇기 위해 고인의 이름을 딴 '더 주디스 임 파운데이션(The Judith Ehm Foundation, 501 (c)(3))' 기념재단을 설립했다.     '더 주디스 임 파운데이션'은 비영리단체로 데이비드 정 회장이 기금을 출연하고 차녀인 그레이스 정-베커 전 법부무 차관보가 이사장을 맡았는데, 고인의 별세 이후 추모의 시간을 가진 뒤 단계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통해 고인의 유지를 계승·발전시킬 계획이다.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주디스 정 임정원 씨씨백화점 뉴욕 코리아타운 맨해튼 코리아타운 데이비드 정 데이빗 정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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